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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차례 꽃이 피면 또 한 번 새롭나니, 차례차례 하늘이 내 가난 위로하네. 조화는 무심하게 얼굴을 드러내고, 건곤은 말도 없이 절로 봄을 머금었네. 술을 불러 시름 씻자 새들 서로 권하고, 뜻을 얻어 시를 쓰매 붓에 신이 이른 듯해. 선택하는 일의 권리 온통 내게 있으니, 벌과 나비 어지러이 날도록 그냥 두네.
배꽃 눈발처럼 문 안에 나부껴 들어오고, 구름 따라 들쭉날쭉 내려앉는 달 그림자. 두견이야 새벽까지 목 놓아 울건 말건, 시름겨운 봄 풍경 게슴츠레 눈 감기네.
고생스레 꽃 한 그루를, 낮은 담가에 손수 심었는데. 큰 눈에도 아무 탈 없더니, 봄 햇살에 잠을 깨려 하네. 흐드러지게 필 날은, 애타게 기다리던 해와 같으리라. 이와 같은 시절을 보니, 소옹만이 이런 사랑 이해하리.
봄 성 가득 떨어진 꽃들 시름겨워 마오, 녹음에 푸른 솔이 더욱 풍류스러우리니. 얄밉게도 두견새는 한식을 재촉하는데, 곁으로는 숲속 꾀꼬리 소리 들려오네.
스무 날 넘게 비바람에 완전히 갠 날 적으니, 병든 눈은 꽃을 보아도 몹시 어두침침하네. 마침 비 걷히고 바람도 다시 잦아들었는데, 도리어 봄 성 가득 떨어진 꽃들 시름겹구나.
오솔길 옆 복숭아 오얏꽃에 황혼이 찾아들 제, 깊숙한 마을 인가들은 문을 닫으려 하는구나. 그대는 저 수많은 꽃가지들 꺾지 마오, 옷에 찬 이슬과 저물녘 노을 흔적 가득하리니.
지금 막 바다 건너 불어왔다 생각하니, 새벽 창 시 읊는 자리 마음이 설레기만. 어여뻐라 이따금 또 휘장을 날리면서, 고향 동산 꽃소식을 알려 주려는 듯.
피부가 눈빛같이 고운 일만의 옥비가, 요대에서 잔치 파하고 해가 저물어 갈 제. 응당 인간 세상의 봄 경치 좋음을 알고, 청명일을 가려서 학을 타고 내려왔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