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봄놀이 하러 작은 다리 서쪽을 건너오니, 떨어진 꽃잎들은 말발굽에 달라붙는데. 숲 너머에선 그윽한 새들이 재치도 많아, 청산을 도맡아서 자유자재로 우는구나.
꽃과 버들 한가로이 유혹하는 계절, 풍광이 노곤해서 잠 속으로 떨어질 듯. 봄이 저물려고 하여 시름이 깊던 차에, 안개처럼 내리는 비를 다시 만났어라. 세상 어디나 보통 있는 외상 술값이요, 말 머리 드높이 돌아가고픈 마음이라. 좋은 시절 만났어도 혼자 즐길 따름, 단지 소원은 풍년이나 자꾸 들었으면.
단비는 제때에 잘도 내리는데, 유인은 밤새도록 잠 못 이루네. 토양이 기름진 몇 이랑의 싹들이요, 부엌 연기 축축한 계수나무 장작이라. 제비집은 축 늘어져서 이제 막 보수하고, 꽃잎은 무게를 못 이겨 거꾸로 매달렸네. 돌아가 농사짓는 것이 무엇이 어렵기에, 나는 올해도 약속을 다시 저버리는가.
봄부터 시작된 가뭄 여름까지 이어지니, 기승부리는 가뭄 귀신 네가 참 밉구나. 천지는 화로가 되어 불처럼 이글거리고, 들판엔 초목이 말라 중머리처럼 민둥하네. 메뚜기 떼가 극성이라 걱정스러운데, 도마뱀도 신통치 않아 의지할 수가 없네. 어찌하면 두 손으로 은하수를 끌어다가, 세상천지 찌는 더위 시원하게 씻어 줄까.
봄풀이 사립문에 오른 곳. 숨어 살아 세속의 일 드무네. 꽃이 나직해 향기 베개에 스미고. 산이 가까워 비췻빛 옷에 물드네. 가는 빗방울 못물에서나 보이고, 약한 바람 버들 끝에서나 알겠네. 天機가 흔적을 남기지 않는 곳. 담담하여 마음과 어긋나지 않네.
봄풀 자라 암비 위로 기어오르는, 그윽한 거처엔 속세 일이 드무네. 꽃 가까워 베개에는 향기가 배고, 산 가까워 푸른 기운 옷에 스미네. 빗방울이 가는 줄은 연못서 알고, 바람 가벼운 건 버들 보고서 아네. 하늘 기미 아무 흔적 없는 곳에선, 담담함이 이 마음과 안 어긋나네.
인생의 빈부는 하늘에 달린 것, 구구한 망상으로 조상을 더럽히랴. 다만 가풍이 석분의 집안 같기를 원하노니, 어찌 위현처럼 재상의 업을 잇기를 생각하랴. 몸을 편안히 하여 주밀한 이들을 부러워하지 않고, 명에 맡겨 여유롭지 않는 때가 없도다. 술 마시고 시 읊조리며 하루하루를 살다 보면, 혹 무사히 일흔 살에 이를 수 있으리.
환갑은 사람이 쉽게 얻기 어려운 것이고, 일생은 봄꿈 속이로다. 늙고 추한 것도 꺼릴 필요 없고, 게으르고 산만한 태도도 기를 만하네. 술을 마시는 일은 진실로 습관이 되었고, 책을 보는 일은 공 들이지 않는구려. 한가로이 자득하여 그저 세월을 보내니, 마음은 삼공도 부럽지 않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