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허름한 집이라 봄추위에 찬바람 새어 들새라, 아이 불러다 땔감 더 넣게 해 여윈 몸 덥히곤. 책 뽑아 들고 남쪽 창가에서 고요히 읽노라니, 형언키 어려운 맛이 있어 홀로 기꺼웁구나.
봄바람은 어느 곳에서 불어와, 밤낮으로 봄 경치를 재촉하는고. 나무 숲은 절로 들떠 움직이고, 연한 초록빛은 못에서 나오누나. 새소리가 사람 마음 일으키니, 유람하는 기쁨 미칠 것만 같아라. 이 좋은 때를 놓쳐서는 안 되니, 소년들과 결탁하여 놀아야겠네.
옛 담장 주변으로 복사꽃 처음 피고, 녹색 버들 늘어졌는데 취하여 졸리네. 때는 이미 한 해의 춘색이 깊으니, 고향으로 돌아갈 맘 앞 개울에 가득하네.
울적한 봄시름에 심사가 편치 않아, 새 울고 꽃 지는 게 왜 이리 마음 쓰일까. 왕손이 오지 않아 해마다 푸른 풀에 맺힌 한을, 공산에서 울어대는 소쩍새에게 부쳐 볼꺼나.
산 늙은이는 원래 산에서 살면서, 열흘이고 한달이고 장창 누었다가, 봄 찾아온 사람 있다고 하면, 반가와서 지팡이 끌고 나온다네.
부슬부슬 밤중의 빗소리를 쓸쓸하게 베개 위에서 듣고, 아침에 일어나 사면 둘러보니. 봄이 벌써 성큼 다가왔구나. 나무 끝엔 푸른 싹이 돋아 있고, 꽃가지에는 꽃술이 향기 뿜어대네. 저 생물의 의미 고요히 보노라니, 나도 모르게 마음이 기쁘네.
산 기슭 시냇가의 너럭바위 대, 올라 굽어보니 석양도 황홀해. 시흥에 겨워 자주 붓대를 잡고, 시름을 삭히고자 술잔을 거듭해. 나그네 혼 꿈길로 서울을 찾고, 벗의 서찰은 산촌까지 전해오네. 봄이 오는 이즘 무단히 놀람은, 잔설 속에 망울 트는 매화 때문.
비 온 뒤에 꽃가지는 짧은 담을 뒤덮고, 작은 못물 새로 불어 원앙새 목욕하네. 시름에 잠긴 사람은 하염없이 발을 걷고 보며, 봄 들어 점점 해가 길어진다 도리어 원망하네.몸은 마치 고목이요 머리는 쑥대이니, 이 몸은 황보산 앞 병든 한 늙은이일세. 궁벽한 마을에 쓸쓸히 문을 닫고 지내노니, 들꽃과 우는 새들이 봄바람을 차지하네.